인문학

억눌린 감정, 어떻게 다룰까? —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바라보는 마음공부

마춤이 2025. 6. 13. 12:34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감정을 경험한다. 기쁨이나 설렘처럼 환영받는 감정도 있지만, 분노나 슬픔처럼 쉽게 드러내기 어려운 감정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종종 감정을 억누르는 방식으로 대처하곤 한다. 참는 것이 어른스러운 것이라 배웠고, 웃는 얼굴이 좋은 사람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억눌린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아 어느 순간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터져 나오거나,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거나, 사소한 말에도 눈물이 나는 날이 있다면, 그건 지금껏 꾹꾹 눌러 담아온 감정들이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바라본다는 것은,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좋고 나쁜 감정이라는 이분법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 내 안에 어떤 마음이 흐르고 있는지를 조용히 들여다보는 연습이다. 억눌린 감정을 억지로 표현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먼저다. 마음공부의 핵심은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친해지는 데 있다. 친해지기 위해선 먼저 그것을 바라보고, 들여다보고, 이름 붙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바라보는 다섯 가지 마음공부 실천법을 살펴본다. 억눌린 감정이 만들어지는 배경부터, 그 감정을 왜 외면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흘려보낼 수 있을지를 단계별로 풀어갈 것이다. 이 글을 통해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억누르지 않고 건강하게 관계 맺는 마음의 힘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억눌린 감정, 어떻게 다룰까? —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바라보는 마음공부

1. 억눌린 감정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 감정 억제의 심리적 뿌리

우리가 감정을 억누르기 시작한 시점은 대부분 아주 어릴 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 울음을 터뜨렸을 때 '울지 마, 괜찮아', 화가 났을 때 '착한 애는 화내지 않아'라는 말을 들으며 우리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잘못된 것처럼 받아들였다. 실제로 대부분의 문화에서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보다 '잘 통제하는 것'을 성숙함으로 여긴다. 특히 분노, 질투, 슬픔 같은 부정적 감정은 위험하고 불편한 것으로 치부되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내 안의 감정을 억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억눌린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언젠가 터지기 위해 뚜껑 닫힌 압력솥처럼 우리 내면에 쌓여간다. 감정을 억누르는 방식은 처음에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른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을 때 상처받거나, 거절당한 기억이 있다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다시는 그런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감정을 억누른다. 특히 가족이나 교사처럼 권위 있는 인물에게 감정을 제지당한 경험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네가 그렇게 느끼는 건 틀렸어"라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받는다면, 우리는 결국 자기 감정을 의심하게 된다. '내가 화내는 게 이상한 걸까?',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내가 이상한가?'라는 질문은 결국 '감정 자체를 억제하는 것'이 습관이 되게 만든다. 억눌린 감정은 표면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일 수 있지만, 그 아래에는 말하지 못한 감정의 층이 존재한다. 겉으로는 평온한데, 마음 한 켠에서는 끊임없이 피로감이나 무기력함이 따라온다. 또는 이유 없는 불안, 갑작스런 우울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는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표현되지 않은 채로 에너지 형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억눌린 감정은 언젠가 신체 증상으로, 또는 관계의 갈등으로 표출된다. 말하지 않았던 감정이 화로 터지거나, 사소한 일에도 분노의 수위가 과도해지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억눌린 감정의 뿌리는 단순히 개인의 의지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온 환경, 관계 맺는 방식, 그리고 감정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복합적인 결과다. 따라서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바라보는 첫걸음은 '내가 지금까지 감정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는 데 있다. 그 억제가 나를 지키기 위한 방식이었음을 인정하고, 그 선택이 나쁘거나 약한 것이 아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를 비난하기보다, 내 감정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던 그 당시의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이 진짜 회복의 시작이다.

2. 나는 왜 내 감정을 감추려 했을까? — 사회적 기대와 내면화된 판단

감정은 인간의 본능적인 반응이며,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신호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라면서 점점 감정을 '숨겨야 하는 것' 혹은 '관리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사회가 요구하는 이미지, 주변 사람이 바라는 모습, '좋은 사람'에 대한 기준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어릴 적부터 '예의 바른 아이', '말 잘 듣는 아이', '밝고 씩씩한 사람'이 되기를 기대받았고, 우리는 그 기대에 맞추기 위해 감정을 하나씩 감추기 시작한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은 타인에게 불편함을 준다는 이유로 자주 억제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감정을 느끼기보다 감정을 판단하는 습관을 먼저 배우게 된 것이다. 감정을 감춘다는 것은 단지 표현하지 않는 차원을 넘어서서, 스스로 그 감정을 부정하고 평가하는 내면화된 판단을 의미한다. '이런 일로 화내는 내가 이상한가?', '이렇게 서운해하는 건 유치한 걸까?'라는 자기검열은 감정이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런 감정 억제가 반복될수록,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능력 자체가 약해진다는 점이다. 결국 나중에는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도 애매해진다. 감정 표현이 서툴러지거나 회피하게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적 역할 역시 감정 억제를 부추긴다. 직장에서 감정을 드러내면 '프로답지 않다'는 평가를 받기 쉽고, 가족 안에서는 '네가 참아야지'라는 말을 듣기 쉽다.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보다, 억누르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환경이 반복되면 우리는 어느새 감정을 감추는 것이 ‘당연한 태도’처럼 몸에 배게 된다. 특히 여성은 감정을 지나치게 표현하면 감정적인 사람으로, 남성은 감정을 표현하면 유약하다는 시선을 받는 사회적 규범은 감정 억제를 더욱 고착시킨다. 감정을 감추는 데 익숙해진 우리는 결국 타인의 시선을 나의 기준으로 삼는다.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 말은 너무 무거운가?', '내가 짐이 되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은 결국 내 감정보다 타인의 기대를 우선시하는 패턴을 만든다. 그런데 그 감정은 억누를수록 더 강해지고, 더 무거워진다. 마치 수면 아래 깊이 가라앉은 돌처럼,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안쪽에서는 무언가 가라앉고 있다. 그렇게 감정은 언젠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반응한다. 작은 말 한 마디에 과도하게 상처받고, 원하지 않게 타인을 밀어내거나,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불편한 감정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내가 이 감정을 느끼는 게 맞을까?’가 아니라, ‘나는 왜 이 감정을 감추려고 했을까?’라고. 감정을 감춘다는 것은 그 감정을 인정받지 못했던 내면의 경험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감정을 회복하는 첫 단계는, 억눌린 감정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감추게 만든 환경과 생각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생존 방식이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 그 이해가 생길 때, 비로소 감정과 다시 관계 맺을 수 있는 문이 열린다.

3. 감정과 거리 두기 대신 감정과 마주하기 — 억누르지 않고 바라보는 연습

감정을 억누르지 않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태도는, 감정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이 올라오면 이를 통제하거나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안하면 없애려고 하고, 분노가 올라오면 억누르거나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으로 덮는다. 하지만 감정은 억제하거나 무시할수록 더 커지고, 억압된 감정은 결국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튀어나온다. 감정을 다룬다는 것은 그것을 조절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일이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바라보는 가장 효과적인 연습은,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말에 서운함이 올라올 때 “내가 왜 서운하지?” “이 감정은 어디서 왔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감정과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감정 안으로 들어가 그 감정의 색깔, 온도, 움직임을 관찰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처음에는 막연하고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반복되면 점점 감정이 터지기 전 단계에서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흔히 감정을 마주하는 일을 두려워한다. 특히 분노나 슬픔 같은 감정은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을 동반한다. 그러나 감정은 본래 우리 안에 잠시 머물렀다 흘러가는 에너지다. 그것을 붙잡고 억누를 때 고여 썩는 것이다. 감정을 마주하는 일은 단순히 용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일이다. ‘그럴 수 있어’, ‘그렇게 느껴지는 건 자연스러워’라고 말하며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순간, 마음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안정된다. 감정 일기 쓰기도 좋은 연습이 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이 올라왔는지를 쓰고,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는 것이다. ‘짜증’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이 사실은 ‘무시당한 느낌’일 수도 있고, ‘불안’이라는 감정의 뿌리에 ‘사랑받고 싶음’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감정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은, 내가 나를 더 깊이 이해하는 일이자, 감정과 친해지는 연습이다. 감정은 적이 아니라 안내자이며, 그 감정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늘 나의 진심이 담겨 있다.

4. 억눌린 감정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 안전한 감정 해소의 방법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바라보는 연습이 익숙해졌다면, 이제는 그것을 어떻게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감정 표현을 피하는 이유는, 그것이 관계에 불편함을 줄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은 표현하지 않으면 관계를 병들게 만들고,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은 결국 나를 병들게 한다. 그래서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감정은 그대로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흘려보낼 때 진짜 소통이 일어난다. 먼저, 감정을 표현할 때는 ‘나의 느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 “너는 왜 항상 그래?”보다는 “네 말에 내가 서운했어”처럼 말하는 것이다. 비난보다 공유, 공격보다 나눔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할 때 상대는 방어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감정은 본래 주관적인 것이다. 그것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 감정은 해소되기 시작한다. 또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은 꼭 타인일 필요는 없다. 스스로에게 편지를 쓰거나, 말로 감정을 소리 내어 풀어보는 것, 혹은 몸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감정을 배출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감정이 머무를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일이며, 억눌렸던 감정이 그 통로를 통해 흘러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울고 싶을 땐 울어야 하고, 말하고 싶을 땐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표현은 해소의 첫걸음이자, 감정이 다시 나에게 상처 주지 않도록 하는 예방이다. 감정을 표현한다고 해서 반드시 해결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표현된 감정은 나와 분리되기 시작하고, 그 분리는 곧 감정의 소유권을 되찾는 힘이 된다.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의식하며 다룰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부끄러워하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감정의 노예가 아니라 감정의 주인이 될 수 있다.

5. 감정과 친해지는 마음공부 — 감정을 다루는 삶의 기술

감정과 친해진다는 말은 다소 낯설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마음공부를 하다 보면 결국 도달하는 지점은 ‘감정과의 친밀감’이다. 감정은 나쁜 것도, 제거해야 할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의 일부이며, 삶의 반응이자 기록이다. 감정과 친해진다는 것은, 어떤 감정이 올라오든 당황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맞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상태야말로 감정이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길잡이가 되는 순간이다. 감정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감정을 ‘통제’의 대상이 아닌 ‘관계 맺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내가 감정을 소화해내는 그릇이 커질수록, 어떤 상황에도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지킬 수 있다. 특히 마음공부에서 말하는 ‘감정 다루기’는 억제도, 폭발도 아닌 ‘흐르게 하는 기술’이다.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을 인지하고, 그 감정을 통해 내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감정은 욕구의 언어이며, 그 안에는 늘 나의 진심이 숨어 있다. 감정과 친해진 사람은 타인의 감정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분노에 반응하지 않고, 그 안에 숨은 상처를 볼 수 있으며, 누군가의 슬픔을 덮지 않고, 그 마음에 조용히 머물 줄 안다. 이것은 타인을 위한 일이기 이전에, 나 자신을 안정시킬 수 있는 힘이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바라보는 연습을 통해 우리는 삶을 더 섬세하게 느끼고, 더 깊이 연결되고,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감정은 피할 대상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선생님이다.

결론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바라본다는 것은, 나에게 정직해지는 일이다. 그것은 내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 인식하고, 그 감정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이 글에서 살펴본 다섯 가지 마음공부는 억눌린 감정을 이해하고 해소하기 위한 과정이면서도, 동시에 나와 친해지는 연습이다. 감정을 억제하지 않아도 되는 삶, 감정이 흘러가도록 허용하는 삶은 우리가 더 온전한 자아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바탕이 된다. 삶은 언제나 감정을 동반한다. 어떤 날은 기쁘고, 어떤 날은 슬프며, 어떤 순간에는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 모든 감정을 받아들이고, 흘려보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감정에 끌려가지 않는다. 대신 감정을 통해 나를 알고, 나를 돌보고, 나를 지켜낼 수 있다. 억눌린 감정은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나의 진심일지도 모른다.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나 자신과 다시 연결된다. 이제는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바라보자. 감정을 미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 감정을 통해 나를 더 이해하자. 감정은 불편하지만 나쁜 것이 아니며, 어렵지만 피할 필요는 없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단단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세상과도 더 깊이 연결될 수 있다. 감정을 바라보는 연습, 그것은 결국 삶을 있는 그대로 껴안는 연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