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행복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다

마춤이 2025. 7. 10. 20:35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 속에서 우리는 늘 무언가를 향해 달려간다. 조금 더 좋은 삶, 더 많은 수입, 더 안정된 관계, 더 나은 나. 무엇이든 '더'라는 말이 붙는 순간 우리는 지금의 상태를 불완전하게 여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건 희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늘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게 만드는 함정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가끔씩 묻는다.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마음 한켠은 허전한지, 왜 많은 것을 갖췄음에도 만족은 늘 멀리 있는지, 왜 사람들은 '지금'의 삶이 아닌 '이후'에만 행복을 기대하는지. 누군가는 해외여행을 다녀와도 다시 일상이 주는 허무에 빠지고, 누군가는 원하는 직장을 얻고 나서도 곧 다른 목표를 찾으며 쫓긴다. 마치 행복은 지금 이 순간에는 머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행복을 너무 거창하게 상상해왔는지도 모른다. 아주 특별한 날, 특별한 장소, 특별한 조건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해온 것이다. 그러나 진짜 행복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아주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 있다. 햇살이 창가에 스며들던 아침,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스스로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주던 그 순간,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흘린 눈물을 닦아내고 일어났던 하루.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나를 다독였던 날들 속에, 행복은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는 감각과도 같다. 거창한 이유 없이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조건 없이 기뻐할 수 있는 눈, 충분히 가졌다는 사실을 아는 감정. 그 모든 것이 지금 여기에 있다. 이 글은 우리가 얼마나 자주 '갖지 못한 것'에 초점을 맞추며 현재의 가치를 놓치고 있는지를 함께 돌아보려 한다. 더 큰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길 위에서도, 지금 가진 것들에 대한 감사가 없다면 그 행복은 결코 도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짜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방향이고, 언제나 '지금 여기'에만 머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해 당신의 하루가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졌으면 한다. 그리고 잠시 멈춰 지금 가진 것들을 바라보며, ‘이대로도 참 좋다’고 미소 지을 수 있기를.

행복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다

1. 비교의 시선이 만든 결핍감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민감하고도 복잡해서, 어떤 순간에는 모든 것이 충분해 보이는데도 단 한 번의 비교로 무너져버리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 햇살이 좋다고 미소 짓다가도, SNS에서 누군가의 여행 사진 한 장을 보는 순간,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의 만족감은 순식간에 초라함으로 바뀐다. 친구가 자랑한 새 차, 동료가 올린 고급 식당의 만찬, 가족 단톡방에서 오간 다른 집 아이의 수상 소식. 그런 모든 장면 앞에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 어딘가가 움츠러드는 것을 느낀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비교’라는 이름의 그림자가 스며드는 순간, 지금 내 삶은 무엇인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결핍의 시작이다. 내 삶이 바뀐 것은 없다. 내 수입, 내 집, 내 하루는 여전한데도 비교하는 마음이 들어오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이 삶을 만족스럽게 느끼지 못한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성적을 비교당하고, 외모를 평가당하며 자라왔다. 잘하는 친구와 못하는 친구를 구분 짓는 언어는 자연스럽게 내면에 새겨졌고, 남보다 앞서야 사랑받는다는 착각 속에서 살았다. 그렇게 우리는 어느새 비교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가늠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를 찾아야 했고, 인정받아야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비교는 결국 끝이 없다. 세상에는 항상 더 가진 사람이 있고, 더 잘난 사람이 있다. 그들을 볼 때마다 나의 결핍은 새롭게 자라난다. 그래서 우리는 쉬지 못한다. 끊임없이 증명하고, 올라가야 하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그렇게 애쓰는 동안, 지금 가진 것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간다. 비교는 마음을 시끄럽게 만든다. 그리고 그 시끄러움은 자꾸만 내 시선을 밖으로 향하게 만든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대신, 다른 사람을 통해 나를 판단하게 되고, 그 판단의 기준은 늘 흔들린다. 어떤 날엔 괜찮은 사람 같다가도, 어떤 날엔 형편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타인의 삶을 기준 삼는 순간, 내 삶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게 된다.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도, 내가 이룬 것의 의미도, 그렇게 비교라는 프레임 속에서 흐려진다. 사실, 나만의 속도로 잘 걷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의 속도를 보며 괜히 초조해지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비교에서 자유로울 때 피어난다. 그 자유는 ‘나는 나’라는 인식에서 온다.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님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삶에 머물 수 있다. 그리고 머무를 수 있을 때 감사가 시작된다. 내가 가진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비교는 내가 가진 것을 흐리게 만들지만, 자각은 그것을 다시 빛나게 만든다. 그러니 자주 물어보자. ‘나는 지금, 나의 삶에 눈을 두고 있는가?’ ‘나는 무엇과 비교하며 내 행복을 유보하고 있지는 않은가?’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비교하지 않고 지금의 나를 인정하는 그 순간, 이미 마음속에서 조용히 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2. 무엇을 가졌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

우리는 자주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은 가질 걸 다 가졌으니 행복하지.” 그러나 정말 그럴까? 눈에 보이는 것을 다 갖췄는데도 깊은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누가 봐도 부족한 환경인데도 환하게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행복은 '무엇을 가졌느냐'보다 '지금 가진 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일지 모른다. 마음이란 참 신기해서,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풍경은 전혀 다르게 보인다. 한 아이는 비 오는 날 창밖을 보며 외롭다고 느끼지만, 또 다른 아이는 같은 창밖을 보며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환경이 아니라 해석이 다른 것이다. 이처럼 삶은 물리적 조건보다 마음의 해석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지금 내 눈앞에 놓인 삶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그것이 바로 행복의 첫 단추다. 세상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가지라고 말한다. 조금만 더 수입을 올리면, 조금만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면, 아이가 명문대에 들어가면, 삶이 더 행복해질 거라고 속삭인다. 그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목표를 설정하고 달린다. 하지만 목표에 도달한 순간, 진짜로 만족하는가? 잠깐은 기쁠지 몰라도 곧 또 다른 결핍이 모습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더 많은 것'에 익숙해진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현재를 바라보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것을 손에 쥐어도 공허함은 줄지 않는다. 그러니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이다. 예를 들어 같은 하루를 보낸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어”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따뜻한 햇살 덕분에 커피가 더 맛있었어”라고 말한다. 똑같은 하루인데도 받아들이는 마음이 다르다. 앞사람은 ‘더 자극적이고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하며 일상을 지나치고 있고, 뒤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작은 기쁨’을 인식하고 있다. 삶은 그렇게 감각하는 대로 달라진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사소한 일에도 따뜻함을 불러오고, 비교하거나 부족함을 세는 마음은 그 어떤 것도 충분하지 않게 만든다. 행복한 사람은 특별한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들은 거창한 사건 없이도 아침 공기의 냄새에 미소 짓고, 오래된 컵에 따뜻한 차를 따라 마시며 마음을 채운다. 반대로 부족한 것을 세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것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한다. 늘 더 큰 것, 더 좋은 것, 더 완벽한 것을 꿈꾸느라 지금 이 순간을 누릴 줄 모른다. 결국 행복은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내 마음의 시선에서 결정된다. 내가 가진 것에 눈을 돌릴 때,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만으로도 감사함이 자란다. 그러니 오늘 하루, 특별한 일이 없어도 마음이 평온했다면 그건 아주 귀한 하루다. 웃을 일이 없어도 조용히 눈을 감고 쉴 수 있었다면, 그 역시 충분히 감사한 순간이다. 내가 가진 것이 작다고 느껴질 때, 그것을 다시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 보자. 내가 가진 삶은 단지 수치로 재는 대상이 아니라, 매일같이 내 마음이 함께 살아가는 살아있는 시간들이다.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면, 지금 가진 것들이 새롭게 빛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행복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다’는 진실을 조금씩 실감하게 될 것이다.

3. 감사는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감사는 어떤 감정이 ‘저절로’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뭔가 특별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오랜 바람이 이루어졌을 때,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을 때처럼 ‘감동적인 순간’이 주어졌을 때 비로소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믿는다. 그러나 살아보니 그렇지 않다. 매일이 특별하지도 않고,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일은 더더욱 많지 않다.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날들이 대부분이고, 때로는 마음을 다해 기대했던 일에 실망하고,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상처받기도 한다. 그런데도 감사는 여전히 가능하다. 왜냐하면 감사는 감정이 아니라 태도이고, 조건이 아니라 선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사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감사할 눈으로 보지 못해서 삶이 메마르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감사는 조건이 갖춰졌을 때 생기는 게 아니라, 내가 그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가능해진다. 이를테면 아침에 눈을 떴다는 사실도, 내가 숨 쉴 수 있다는 것도,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도, 모두 평범한 일이 아니라 기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일들을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감사’는 커다란 무언가가 주어졌을 때에만 허락되는 감정이라고 오해하곤 한다. 그렇게 작은 기쁨들은 지나쳐버리고, 큰 기쁨이 오지 않는 날은 허무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감사는 선택이다. 똑같은 상황을 겪고도 어떤 사람은 불만을 품고, 어떤 사람은 감사해한다. 누구는 외출하려는 날 비가 오면 짜증부터 내지만, 누구는 오랜만에 흙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누구는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다고 하지만, 또 누구는 그 일상이 있어 마음이 놓인다고 느낀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이 변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마음공부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첫 번째 진실이기도 하다. 감사는 느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어떤 마음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나의 결심에서 시작된다. 감사를 삶에 자주 불러오면, 놀랍게도 그 마음은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바람막이 역할을 한다. 일이 풀리지 않아도 ‘이것 또한 나를 위한 시간일지 몰라’라는 여유를 주고, 관계에서 상처를 받아도 ‘이 경험 덕분에 나는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어’라는 자각으로 이어진다. 감사는 아픔을 없애지는 못해도, 아픔이 마음을 망가뜨리는 걸 막아주는 힘이 있다. 그래서 감사는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키는 마음의 힘이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매일 조금씩 단단해지고,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부드럽지만 강한 중심을 갖게 된다. 우리는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직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아도, 아직 내가 원하는 모습에 도달하지 못했어도, 이 순간에 감사할 줄 안다면 이미 삶의 깊은 비밀을 알아버린 사람이다. 감사는 나를 나답게 만들고, 삶을 더 온전히 받아들이게 해주는 가장 따뜻한 도구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지금 이 순간, 어떤 마음을 선택하고 있는가? 바쁜 하루 속에서도, 피곤한 저녁 속에서도, 작게라도 감사할 무언가를 발견해보자. 그 작은 선택이 모여 삶은 아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달라질 것이다.

4. 지금 이 순간을 충만하게 채우는 감정의 습관

우리는 순간순간 삶의 조각들을 지나치고 있다. 그 조각들이 쌓여 하나의 하루가 되고, 그 하루들이 모여 인생이 된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종종 깨닫는다. 왜 그때는 그 소중함을 몰랐을까. 왜 그날은 그저 스쳐가는 평범함으로만 여겼을까. 사실 인생에서 가장 충만한 시간은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늘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채로 살아간다. 과거의 상처에 머물거나, 미래의 불안을 앞당겨 품고,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무르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을 충만하게 채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주 단순한, 그러나 지속적인 감정의 습관이다. 예를 들어 깊이 호흡하며 지금 숨 쉬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것, 따뜻한 햇살이 내 몸을 감싸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 눈앞에 놓인 음식의 향과 맛을 음미하는 것. 이처럼 몸과 마음이 모두 ‘지금’에 있어야만 가능한 경험들은, 우리에게 삶의 깊이를 선물한다. 충만함은 특별한 일이 있어야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익숙한 일상 속에서 내가 어떤 태도로 이 순간을 대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감정은 우리를 흘려보내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감정을 습관처럼 선택할 수도 있다. 불안과 비교를 습관처럼 고르는 대신, 고요와 만족을 연습하는 감정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감정의 습관은 처음엔 낯설고 어색하지만, 반복될수록 익숙해지고 결국은 삶의 기본 리듬이 된다. 누군가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해야 할 일에 압도당하고, 또 누군가는 같은 아침에 감사의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감정은 사건보다 앞선다. 같은 일을 겪고도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채우는 감정의 선택이 바로 내 인생 전체의 분위기를 바꿔놓기 때문이다. 행복한 사람은 특별한 일을 겪는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순간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충만함을 느끼는 사람은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이 아니라, 지금 있는 것의 소중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들은 시간을 쫓지 않고,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을 껴안고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순간의 가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채워간다. 그것이 바로 감정의 습관이 선물하는 내면의 여유이고, 삶을 깊이 있게 만드는 진짜 연습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어떤 감정으로 채우고 있는가? 무심코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지금 멈춰, 마음속에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지?’ 그 물음 하나로 우리는 다시 지금 여기로 돌아올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야 비로소 삶은 더 이상 멀리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오늘 하루를 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택은,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느끼는 것이다. 그것이 충만함이 되는 가장 단순한 길이다.

5.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감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하나의 목표처럼 생각한다. 이루어야만 하고, 도달해야만 하고, 노력 끝에 얻어야만 하는 어떤 특별한 상태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말한다. "이 일만 끝나면 행복할 거야.", "저 사람과 함께라면 나도 행복할 수 있겠지.", "좀 더 돈을 모으고 나면 여유가 생길 거야." 하지만 그렇게 도달하고 나면, 또 다른 목표가 생긴다. 또다시 그 행복은 한 걸음 앞에서 나를 유혹하며 달아난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나는 도대체 언제쯤 행복했던 걸까?’ 진짜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게 아니다. ‘언제’ 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의 감각 속에 있다. 바쁜 하루 속에도 문득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감각, 남몰래 피어 있는 들꽃 하나를 눈여겨보는 마음, 따뜻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녹아내리는 그런 순간들 속에 행복은 고요히 숨어 있다. 그것은 거대한 성취보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들에 깨어 있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누군가와 함께 웃을 수 있는 순간, 스스로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그 짧은 시간, 그리고 조건 없이 주어지는 지금의 삶 자체가 주는 기적을 알아차리는 감각. 이것이 바로 행복이다.

우리는 때때로 너무 멀리 있는 것을 찾느라, 지금 손안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잊는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부족한 것만을 채우려 애쓴다. 하지만 삶은 그런 부족을 채워가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기억하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지금 있는 그대로, 지금 여기서,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들과 함께하는 것이야말로 삶이 우리에게 준 진짜 선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목적지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앉아 삶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행복은 감각이다. 그것은 보는 방식이며, 느끼는 방향이다. 수많은 외부 조건이 바뀌지 않아도, 내가 어떤 감정으로 삶을 바라보는지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른 빛깔로 물든다. 같은 날, 같은 공간, 같은 상황이라도 감사와 여유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곳은 곧 안식처가 된다. 결국 우리가 찾아 헤매는 모든 행복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먼 곳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내 안의 감각으로 존재할 것이다. 이제 당신에게 묻고 싶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을 보고 있는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어딘가를 상상하며 지금을 놓치고 있진 않은가? 그 모든 질문 앞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당신이 있다면, 지금 이 글을 읽는 바로 이 순간이야말로 행복이 머물 수 있는 자리가 아닐까. 행복은 결국, 아주 작고 사소한 ‘지금’의 감각을 포착할 수 있는 사람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감각은 매일 연습할 수 있는 마음의 습관이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한 나, 그 감각을 기억하며

행복은 어쩌면 단 한 번도 우리를 떠난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단지 우리가 눈을 돌렸고, 비교했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만 기대를 걸었기에 그것이 없는 줄로만 알았을 뿐이다. 바쁘게 달리는 삶 속에서, 늘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자주 스스로를 다그친다. 더 가져야 하고, 더 이루어야 하며, 더 인정받아야만 한다고. 하지만 그런 다짐들 속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소중한 것들이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상, 특별할 것 없는 날들의 연속 속에 묻혀 있지만, 그 안에야말로 진짜 행복이 숨어 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 지금 마시는 한 모금의 물,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 무엇보다 귀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삶과 다시 연결된다. 불안은 미래에서 오고, 후회는 과거에서 오지만, 감사와 평안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만 자라난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은 것을 향해 달리는 일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에 머무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기르는 일이다.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사는 것의 반복이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 비로소 우리는 진짜 ‘나’와 마주할 수 있다. 결국, 행복은 정답이 아니라 느낌이다. 누구도 대신 알려줄 수 없고, 누군가의 방식이 곧 나의 방식일 수는 없다. 중요한 건 내 안의 감각을 믿고, 그 감각에 귀 기울이는 연습이다. 그렇게 내면의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언젠가 깨닫게 된다. 삶은 언제나 여기 있었고, 나는 이미 충분히 잘 살아내고 있었다는 것을. 아무것도 바꾸지 않아도, 아무것도 더하지 않아도, 지금 이대로의 나로도 충분히 괜찮다는 것을. 이제는 더 이상 먼 곳에서 행복을 찾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이 머무는 자리, 당신이 바라보는 시선, 당신이 내쉬는 숨결 속에 이미 그것은 존재한다. 오늘도 우리는 크고 작게 수많은 감정들을 지나며 살아가지만, 그 모든 감정의 바닥에는 언제나 평온함이 있다. 단지 그 평온함에 도달하기까지, 우리가 얼마나 멀리 돌아가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니 오늘, 아주 작고 조용한 순간에 잠시 멈추어 보자. 지금 이 순간이 주는 따뜻한 감각을 느껴보자. 그리고 그 감각을 마음 깊이 새겨두자. 행복은 먼 곳에서 오지 않는다. 행복은 늘 지금 여기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